월든 - 헨리 데이빗 소로우 - (Walden - Henry David Thoreau- ; 나누고 싶은 글 아홉)

Posted by Hey,dude!
2009. 12. 28. 13:30 정보 & 취미/취미 & 영상 & 글 &영화

반응형



월든의 저자인 소로우는 남들의 평판 때문에 우리의 삶이 자유롭지 않다고 말한다.

소로우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삶의 작은 틀이 무너질까봐 불행이 계속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하나 던진다.

인간의 주 목적은 무엇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진실로 필요한 수단과 방편이 무엇인가

이에 대해 사람들은 현재의 통상적 생활방식을 고의로 택한다고 한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진정 믿고있는 사람들에 대한 회의를 나타낸다. 사실 그것을 벗어나면 또 다른 삶이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지루한 일상을 죽을때 까지 반복하며 행복하지 않다고 불평만 할 뿐이다.

그래서 소로우는 말한다. 잘못된 고정관념은 지금이라도 버리라고.


===================아래는 본문 내용입니다.==================



인간에게는 신성이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밤낮으로 장터를 돌아다니는 저 짐마차꾼을 보라! 그의 몸 안에서 조금이라도 신성이 작동하고 있는가? 그의 가장 큰 의무는 자기 말에게 먹이와 물을 주는 것이다. 그가 챙겨야 할 짐마차의 운송대금에 비교할 때 그의 운명은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의 상전은 바로 ‘시끌벅적 사업가’ 씨가 아닌가? 그의 신성과 불멸성은 어느 정도인가? 그가 하루 종일 움츠리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막연한 불안에 휩싸여 있는 모습을 보라. 불멸이나 신성은 커녕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 즉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서 얻어진 평판의 노예가 되어가는 것이다.

여론, 즉 대중의 평가는 우리 자신에 의한 자체평가에 비교하면 대단한 폭군이 되지 못한다. 자기가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가 곧 그의 생애를 결정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그것에 대한 지표가 되는 것이다. 월버포스[각주:1]는 서인도제도의 노예들을 해방시켰지만 정신의 세계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을 해방시킬 그와 같은 인물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자신의 운명에 너무 생생한 관심을 나타내지 않기 위하여 마지막 날까지 자수 방석이나 짜고 있는 이 나라의 부인네들을 생각해보라! 마치 영원을 해치지 않고도 시간을 죽일 수 있다는 태도가 아닌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의 인생을 조용히 보내고 있다. 이른바 체념이라는 것은 확인된 절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절망의 도시에서 절망의 시골로 들어가 밍크나 사향쥐[각주:2]의 용기에서나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인류의 이른바 유희나 올락 밑에는 무의식적이나마 판에 박힌 절망감이 숨겨져 있다. 이것들 안에는 진정한 놀이가 없다. 왜냐하면 놀이는 일 다음에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망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한 특징이다.

인간의 주 목적은 무엇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진실로 필요한 수단과 방편이 무엇인가 하고 교리문답식으로 생각해볼 때 사람들은 고의적으로 현재의 통상적인 생활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어떤 생활방식보다도 그것을 선호했기에 말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들은 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특하고 건전한 품성을 가진 사람들은 오늘도 훤히 솟구쳐 오른 태양을 잊지 않는다. 잘못된 고정관념은 지금이라도 버리는 것이 낫다. 아무리 오래된 사고방식, 혹은 행동방식일지라도 증명되지 않은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오늘 모든 사람들이 진리라고 받아들이고 묵과한 것이 내일에는 거짓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들에 단비를 내려줄 구름으로 믿었던 것이 한갓 견해라는 이름의 연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듯 말이다. 노인네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일도 여러분은 시도해서 이루어내고 있지 않은가? 옛사람들에게는 옛 행위가 있고, 새 사람들에게는 새 행위가 있다. 옛사람들은 새로운 연료로 불을 지피는 방법을 몰랐지만, 새 시대의 사람들은 솥 밑에 마른나무 몇 쪽을 태워서[각주:3] 새처럼 빠르게, 그야말로 노인네들을 치어 죽일 만큼 빠른 속도로 지구를 도는 것이다.

나이 많음이 젊음보다도 더 나은 선생이 될 수 없고 어쩌면 그보다 못하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은 나이 먹는 과정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인생의 과정에서 절대적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배우지는 못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늙은이들은 젊은이들에게 줄 만한 중요한 충고의 말을 갖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경험은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인생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러한 실패가 개인적인 사유 때문이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의 쓰디쓴 경험에도 불구하고 다소의 신념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예전처럼 젊지 않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30여 년을 살아왔으나 아직까지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유익한 가르침이나 진심에서 우러난 충고 한마디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내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으며 아마 해주려 해도 해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인생이라고 하는 내가 그 대부분을 겪어보지 않은 하나의 실험이 있다. 선배들은 그것을 이미 겪었다는 것이 내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앞으로 어떤 가치 있는 경험을 하게 되더라도 나의 선배들이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는 회상을 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한 농부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채소만 먹고는 못 삽니다. 뼈가 될 만한 성분이 하나도 없거든요.” 그러고는 자기 몸에 뼈 성분을 공급해줄 원료를 생산하느라고 꼬박꼬박 하루의 일부분을 바친다. 농부는 이런 말을 하는 동안에도 줄곧 소 뒤를 따라다니는데, 그 소인즉 풀만 먹고 자란 뼈를 갖고서도 온갖 장애물을 헤치면서 농부와 그의 육중한 쟁기를 끌고 있다. 어떤 물건은 노인과 병자들 사이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그러나 그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사치품에 지나지 않으며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도 않다.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을 그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선인(先人)들이 모두 답사하고 모든 일들을 다 해결해놓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영국의 저술가 이블린[각주:4]에서 인용되었다. ">의 말에 의하면 “현명한 솔로몬 왕은 나무와 나무의 간격까지도 법령으로 규정했으며, 로마의 집정관들은 백성들이 이웃 사람의 토지에 들어가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집어오는 것이 몇 번까지 허용되며, 주인의 몫은 얼마인지를 정해놓았다.”고 한다. 또한 히포크라테스[각주:5]는 손톱을 자르는 법까지 후세에 남겨놓았다. 그는 손톱은 손가락 끝에 맞추어 자를 것이며, 더 길거나 짧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인생의 변화와 즐거움을 다 소진시키고도 남을 권태와 싫증은 분명 아담 시대부터 있어온 모양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간의 능력은 한 번도 제대로 측정된 적이 없다. 과거에 해놓은 일만을 가지고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없고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인간이 시도해본 것은 너무나도 적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과거에 어떤 실패를 했든간에 “나의 아들아, 괴로워 말지니 네가 완수하지 못한 일을 누가 너에게 강요하겠느냐?"[각주:6]에서 인용. ">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
  1.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 _ 영국의 정치가 및 노예해방 운동가. 영국과 그 식민지에서 노예제도 폐지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본문으로]
  2. 밍크나 사향쥐는 덫에 걸렸을 때 다리를 물어뜯어 잘라내서라도 자유의 몸이 되고 만다고 한다. [본문으로]
  3. 그 당시 새로 발명된 증기기관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4. "존 [본문으로]
  5. 히포크라테스(B.C.460? ~ B.C.370?) _ '의학의 아버지‘ 라고 불리는 저명한 그리스의 의학자. [본문으로]
  6. "힌두교의 [본문으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