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 헨리 데이빗 소로우 - (Walden - Henry David Thoreau - 나누고 싶은 글 열 하나)

Posted by Joe Hey,dude!
2009. 12. 28. 14:03 정보 & 취미/취미 & 영상 & 글 &영화

패션(Fasion)과 유행(Vogue)에 관하여.



여자 친구들(애인이 아닙니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왜 여자들은 한 명이 어그부츠를 신으면 다 어그부츠를 사냐고, 한 명이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왜 다들 미니스커트를 따라입냐고. 내 주위의 남자친구들도 대부분 나이키의 혀가 발목까지 오는 운동화를 가지고 있다. 이에대한 해답을 소로우에게서 찾을 수가 있었다.



옷을 구입할 때 우리는 참다운 실용성보다는 새것을 좋아하는 심리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하는 점에 더 좌우되기 때문에 그토록 패션에 민감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유행의 여신인데 이 유행의 여신은 전적인 권위를 가지고 실을 뽑아서 옷감을 짜고 옷을 재단한다. 파리에 있는 두목 원숭이가 어떤 여행용 모자를 쓰면 미국에 있는 모든 원숭이들은 그와 똑같은 모자를 쓰는 것이다." 라고 소로우는 말한다.



소로우가 내면 보다는 겉모습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재미있게 비판하고 있다.
나조차 이 비판에 동의하지만 옷은 사람의 위치를 나타내는 한가지 지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소로우가 가졌던 성인군자의 모습을 완전히 닮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도 한다.
이렇게 두 가지 마음을 먹는 이유는,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태어나 외모지상주의 시대로 넘어온 시기를 살고있고 거기에 동화된 이유도 있지만 아직 내 인성이 성숙함과는 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래는 본문 내용입니다===============






그러면 실제 문제에 들어가 우선 의복을 생각해보자. 옷을 구입할 때 우리는 참다운 실용성보다는 새것을 좋아하는 심리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하는 점에 더 좌우된다. 일을 해야 할 사람에게 그가 옷을 입는 목적은 첫째 체온을 유지하기 위함이요, 둘째 현재의 인간 사회에서는 알몸을 가려야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보자. 그러면 그는 지금 있는 옷만 가지고도 중요한 사업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왕실의 제단사가 만들어 바친 옷이라도 한 번만 입고 버리는 왕과 왕비 같은 사람들은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깨끗한 옷을 걸어두는 목마나 다를 것이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의 의복은 날이 갈수록 입는 사람의 성격이 스며들어 점점 몸의 일부처럼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그것이 우리의 몸인 양, 의료 기구를 대보거나 어떤 의식을 치르기 전에는 그 옷을 벗어던지기를 주저하기에 이른다.



나는 어떤 사람이 기운 옷을 입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낮게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대체로 사람들은 건전한 양심을 갖기보다는 유행에 맞는 옷, 적어도 깨끗하고 기운 자국이 없는 옷을 입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설사 찢어진 곳을 깁지 않고 그대로 입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드러난 최악의 부덕은 기껏해야 주의가 좀 부족하다는 정도일 것이다.

나는 가끔 다음과 같은 테스트로 나의 친지들을 시험해본다. 즉 당신들 중의 누가 무릎 위를 깁거나 또는 두어 번 박음질을 한 옷을 입어볼 용기를 가졌느냐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옷을 입으면 자신의 앞날이 망쳐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떨어진 바지를 입기보다는 차라리 다리가 부러져 거리를 절룩거리며 걷는 것을 택할 것이다. 한 신사의 다리에 사고가 생기면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그 비슷한 사고가 그의 바짓가랑이에 생기면 치료 방법이 없다.
 




그는 무엇이 진실로 존경할 만한 것인가 보다는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 염두에 둔다.


우리는 사람은 몇 알지 못하나 외투나 바지는 무던히도 많이 알고 있다. 당신이 마지막 입었던 옷을 허수아비에게 입혀놓고 그 옆에 알몸으로 서 있어보라. 그러면 누구나 당신보다는 허수아비에게 먼저 인사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옷을 벗어버렸을 때 어느 정도까지 각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는 흥미로운 문제이다. 그 경우 당신은 가장 존경받는 계급에 속한 일단의 문명인들을 틀림없이 가려낼 수 있겠는가?


동서양에 걸쳐 모험적인 세계 여행을 했던 파이퍼 부인이 비교적 고국에 가까운 러시아령 아시아 지방에 다녀와서 관리들을 만나러 갈 때 그녀는 여행복이 아닌 다른 옷을 입을 필요를 느꼈는데, 그 이유는 “이제는 옷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문명국에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적인 우리 뉴잉글랜드 지방에서도 어떤 사람이 우연히 한 재산을 모아 자기의 부를 옷이나 장신구로 과시하기만 해도 거의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존경을 표시하는 사람들은 그 수가 아무리 많을지라도 바른 길을 모르는 이교도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에게는 선교사를 파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옷을 해 입게 되면서 바느질이 생겨났는데, 이 바느질이라는 것은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일이라 하겠다.

적어도 여자의 옷은 결코 완성되는 날이 없을것이다.



마침내 무엇인가 할 만한 일을 발견한 사람은 그 일을 위해서 새 옷을 장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러 해 동안 다락에서 먼지가 뿌옇게 쌓인 채로 있던 헌 옷을 꺼내 입어도 될 것이다. 헌 구두는 영웅이 신으면 그의 하인이 신을 때보다 더 오래갈 것이다. 맨발은 구두보다 더 오래된 것인데, 영웅은 맨발로도 다닐 수 있으리라. 만찬회나 입법기관에 드나드는 사람들만은, 사람 자체가 수시로 달라지므로 그때마다 새 외투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상의와 바지, 모자와 신발이 그 차림으로 하느님을 예배하기에 손색이 없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미의 세 여신’이나 ‘운명의 세 여신’을 숭배하지 않고 유행의 여신을 숭배하고 있다. 이 유행의 여신은 전적인 권위를 가지고 실을 뽑아서 옷감을 짜고 옷을 재단한다. 파리에 있는 두목 원숭이가 어떤 여행용 모자를 쓰면 미국에 있는 모든 원숭이들은 그와 똑같은 모자를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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